친일파를 처단하는 80대 알츠하이머 노인
캐나다와 독일의 2015년 합작 영화 <리멤버, 기억의 살인자>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나치 전범을 찾는 원작이야기를 친일파를 차단하는 스토리로 현지화했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침략을 당했던 많은 나라들이 리메이크할 수 있는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는 많았지만, 현재를 배경으로 하면서 알츠하이머라는 소재가 섞인 것이 신선했다.
친일파를 처단하는 80대 알츠하이머 노인이라니, 주제부터 뜨거웠지만 영화 <리멤버>는 한국인이라면 뜨거워질만한 주제를 아주 격렬한 장르와 스토리로 풀어내면서 한편으로는 조금 온도를 내린 시선까지 제시하고 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예요
제이슨이 프레디에게 이렇게 물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예요"
일부 관객들의 마음을 대변한 질문이었고, 관객들은 남주혁 배우가 연기한 제이슨의 입장에 설수밖에 없었다.
프레디가 쓰는 한자를 알아볼 수 없었고, 그의 계획도 제데로 알 수 없으며, 타깃들의 일본어 이름도 낯설다. 위조된 신분증을 공공 사물함에서 꺼내는 장면을 보면 의도적으로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게 만들어서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는 상황을 한마디말로 설명해 버리는데, 이렇게 주인공은 시종일관 계획을 감추며 나아간다.
이는 감독이 '한필주'로 대표되는 전쟁세대를 이해하기 어렵게 묘사하고 있다고 느꼈다. 현재의 사람들, 전후 세대 역시 일제의 악행에는 분노하지만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른 온도를 보인 것이다.
상황을 화면으로 보여주지 않고 한마디 요약으로 설명해 버리는 연출은 우리가 한 줄의 문장으로 접했던 역사의 온도와 같았다. 극을 끌어가는 주인공은 한필주인데, 관객들은 계속 그에게 몰입하기 어려웠고, 오히려 어리둥절해하는 제이슨의 위치에서 위태로운 80대 치매 노인을 겨우겨우 따라가게 된다.
<리멤버>는 이런 미묘한 온도차를 통해 다른 시선을 이야기한다. 친일파나 악덕 기업에 대한 분노는 뜨겁게 표출하는데, 인물들이 평면적인 악당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세상이 변했다
주인공의 이름은 '한필주'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프레디'로 더 많이 불린다.
그는 '한필주'로 태어나 '기요하라 다카요시'가 되고 이제는 '프레디'로 살고 있다. 그의 이런 이름변화는 역사를 담고 있다고 느꼈는데, 조선이 대한제국이 되고 주권을 잃었다가 대한민국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의 제거 대상들은 모두 창 씨 개명을 했는데, 독립이 되고 나서는 다시 한국이름을 썼다. 언뜻 이전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세상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없다. 프레디가 죽인 친일파들은 새로 세워진 대한민국에 어울리는 이름이 아니라, 자신이 죄를 짓기 전 이름으로 되돌아 가려했을 뿐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말이다. 그러나 한필주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필주는 프레디로 살아간다. 자신이 기요하라 다카요시였던 시절을 부정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이다.
착하게 사세요
교도소에 면회 온 제이슨을 만난 프레디는 "세상에 착한 사람이 참 많습니다"라고 한다.
자신의 누이도 아버지도 착한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친일파들이 말했고 프레디도 말했듯 착한 사람들은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었다. 그 역시 살아남기 위해 나쁜 짓을 했고,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또 나쁜짓을 저질렀다. 그런데 제이슨에게는 '착하게 살라'라고 말한다. 나는 그 말이 '그래, 네가 옳았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프레디를 막고 죗값을 치르는 게 옳은 일이라던 제이슨이 맞다는 것이다.
아직도 세상은 험하고 불합리한 일들이 많다. 하지만 프레디의 젊은 시절과는 많이 달라졌고, 지금의 젊은 세대는 공정과 정의를 바라고 있다. 국가와 민족을 배신하고 이웃과 가족을 팔아넘긴 나쁜 사람들과 비극적인 역사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그들을 칼로 찌르고 총으로 쏴 죽이는 것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지난 일이니 없던 일로 하자는 것도 아니다. 제이슨이 감옥에 있는 프레디에게 나쁜 짓을 했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한다.
착한 사람이 정의롭게 싸워서 살아남는 것이 가능해진 세상. 그것이 과거와는 달라진 지금의 세상이다.
당연히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 이야기하고, 법에 따라 죗값을 치르는 옳은 과정을 거쳐야 역사와 사회에 남은 상처가 곪지 않고 치유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히 잊지 않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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