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결정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
이승원 감독의 영화 <세자매>는 저예산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배급하는 배급사, 작품의 가치를 돈으로만 따질 수 없는 만큼 양질의 영화가 많았던 리틀빅픽쳐스에서 나온 영화이다. <세자매> 또한 문소리와 장윤주 배우가 나오지만 상업영화와는 그 궤를 달리하고 있다. 특히 이야기의 구조 면에서는 독립영화와 유사하다.
영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사건을 두고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주인공을 내세우는 상업영화와는 달리, <세자매>는 여러 가지의 에피소드들을 흩뿌려 둔 채 그 상황에서 인물들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지켜보는 그런 영화이다. 이러한 영화들의 플랜은 명확한데, 여러 개로 나뉜 에피소드들은 감독의 시선이 담긴 각자마다의 시의성을 띄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상황들을 주인공들이 겪으면서 변화와 성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러한 과정을 보머 대리만족을 느끼거나 메시지를 전달받게 된다.
어쩌겠어요, 이렇게 다른 걸.
여기서 재미있는 건 <세자매>가 취하고 있는 캐릭터의 방식이다.
많은 독립 영화들이 변화와 성장을 좀 더 쉽고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영화의 전반부 캐릭터의 전사를 뚜렷하게 설정하고, 주인공의 내적 결핍 요소를 보여주거나 주인공의 세계관을 보여주기도 한다. 쉽게 말하면 '이렇게 변했다'를 보어주기 위해서 '이랬던 사람이다'를 강조하는 것이다. 다만 <세자매>의 주인공들은 시작부터 어느 정도는 변화를 마친 인물처럼 보인다. 각자만의 외형, 말투, 성격, 세계관이 이미 성립된 사람이다.
성가대를 지휘하는 신망 높은 교인이자 어느 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가진 영화의 주인공 둘째 미연. 그녀는 동생의 징징거림에도 쉽게 짜증을 내거나 험한 말을 하지 않는다. 주위의 사람을 돌봄에 있어선 강한 책임감을 보이기도 한다.
첫째 희숙은 미연과는 또 다르다. 항상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살고, 하나뿐인 딸과 남편에게 무시를 당하고 있다. 심지어 암선고를 받았는데도 가족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내지 못하고 혼자 간직하고 있다.
가장 독특한 건 셋째인 미옥인데, 교회를 가든, 학교를 가든, 술을 달고 사는 주당이자 자신의 예술관에 자부심이 넘치는 작가이다. 걸핏하면 화와 짜증을 내는 기분파이며, 어떻게 보면 심하게 단순해 보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들이 왜 이러한 외형, 말투, 성격,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지 시간을 거슬러 그 원인을 응시한다. 이야기의 구성은 잘 안착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밀도가 약하다는 인상은 있다. 주연이 3명인 만큼 이야기도 3가지로 갈라지며, 그 비중도 어느 정도 균형감을 가지고 있다. 다만 신과 신 사이의 호흡이 좋지 못해 조금은 혼잡하기도 하다. 사건이 완전히 마무리된 뒤 다음으로 넘어간다기보단 관객들은 조금의 정보나 감정을 더 원하는데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사실 밀도가 낮다는 건 몰입을 끊게 할 수도 있으며, 몰입이 끊어진다는 것은 지루함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사실 이것은 감독의 감각이자 재치라고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세자매>는 이러한 지점에서 어느 정도의 안전장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출과 시나리오 관점
첫 번째, 영화의 유머가 좋다.
충무로의 영화들이 상업적인 성공을 위해 과도한 유머를 쓰는 경우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는데, <세자매>에서의 유머는 정말 조미료의 선에서 잘 정제되어 있다. 많이 등장하지 않음에도 그 타율이 굉장히 높은 게, 감독님이 굉장히 위트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한 슬랩스틱, 과장된 리액션이 아닌 한 마디씩 툭툭 던지는 게 분위기를 좋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코미디를 책임진 장윤주 배우의 수행능력 또한 훌륭했다. 전업 배우가 아님에도 기존에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영리하게 사용한다는 인상이 들었다. 뭔가 마냥 철없는 캐릭터로 보일 수가 있는데 거부감이 적었다고 할까.
두 번째는 바로 연기이다.
좋은 영화라면 좋은 연기는 기본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겠지만, <세자매>는 한 수위의 연기 내공을 보여준다. 정말 문소리 배우와 김선영 배우의 모든 순간이 놀라웠다. 영화에서 가지고 있는 상황들이 굉장히 극적이었는데, 같은 교회의 젊은 교인과 바람난 남편, 사이비종교를 찾아가거나, 암진단을 받았다거나, 짧은 시간에 영화 같은 순간들이 연이어 발생한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3명의 캐릭터들이 영화의 러닝타임을 나눠 먹어야 하는 형국이다. 그렇다 보니 등장하는 사건들의 설정과 해결이 부족할 수 있음에도 그런 생각이 잘 안 들었다. 그 이유는 배우의 얼굴과 호흡만 봐도 납득이 가는 지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세자매> 감상 후 느낀 점
전반적으로 취향에 잘 맞는 영화였다. 기본적으로 대사가 좋고, 상황이나 인물의 묘사 또한 사실적이었다.
<세자매>는 가족을 소재로 한 드라마 장르의 영화였고, 이 영화에서의 가족은 조금 특별한 게 세 자매라 하지만 이들은 배다른 자매였다. 배다른 형제, 자매라는 외적인 선입견을 탈피해 영화의 내적인 설정을 기반으로 그 관계를 응시한다. 새엄마이기 때문에 아들과 친구처럼 지낼 수 있거나, 배다른 자매임에도 같은 아픔을 공유했기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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