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하지 않고, 공감되는 정가영 감독표 영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든, 어떤 분야에서 창작을 하는 사람이든,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이야기를 만들 때의 신남은 관객에게, 독자에게 전달이 되기 마련이다. 또 이야기란 자기 스스로를 납득시키지 않으면 좀처럼 재미있게 만들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정가영' 감독표 영화들은 한결같은 주제를 말해 왔다. 이 주제를 재미있게 말하는 데에는 이만한 사람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리고 그 장점은 언제나 그렇듯 연애가 시작될 때에 그 미묘하고 아슬아슬한 감정, 서로 탐색하고 살피다가 덤벼들 타이밍만을 기다리는 순간에 그 긴장감을 드러내는 데 있다. 특히 그 상황에서 서로 나누는 이야기, 대사와 대사가 섞이는 순간에 그 감칠맛이 일품이다. 적절한 비속어, 욕설을 섞어 내뱉는 살아있는 언어야 말로 '정가영' 감독의 영화에서 큰 특징이다.
로맨스의 시작
영화는 '함자영'의 일상으로 시작한다. 영화 초반 '함자영'의 입으로 말하는 자기 고백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다. 남자뿐 아니라 여자도 스물아홉이 되면 몽정을 한다는 자영은 내일은 '헬스클럽의 귀염둥이'를 자빠뜨릴 예정이라고 말하는 솔직한 여성이다. 자영이 친구들을 만나서 하는 이야기에서 자영의 캐릭터가 강력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박우리'는 문창과를 나온 후 소설가의 길을 포기한 채 잡지사에서 일하는 인물로, 편집장이 요구로 섹스 칼럼을 써야 하는 입장이다. 자영은 외로움과 호기심에, 우리는 칼럼을 쓰기 위해 어플 '오작교미'를 쓰게 되면서 만나게 된다.
처음으로 어플을 쓴 두 사람이 만나서 밥을 먹을 때 그 미묘한 상황이 주는 성적 긴장감, 그 미묘한 긴장이 일으키는 흡입력이 대단하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아주 귀여운 톤을 내내 유지하고 있는데, 만남 앱이라는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이 작품이 무거워지지 않는 이유는 인물들의 귀여운 매력을 부각하거나 인물의 심리를 다양한 소재로 드러내고 배경과 연결시키는 등의 깨알 같은 연출을 놓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도 상처 입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기
자영과 우리가 소주를 마시는 자리에서 자영이 했던 말이야말로 이 영화의 주된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친구들을 만나도 다 솔직하진 못하더라, 우리 센 척 작작하자, 사실 다들 외롭잖아, 여기 안 외로운 사람 어디 있어"
한 번도 상처 입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는 것은 어렵다. 누구나 거절당하는 게 무섭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보일지 걱정하기 때문에 쉽게 솔직해지는 것이 어렵다. 결국 자영의 말처럼 둘은 서로에게 솔직해지고 그들은 서로를 받아들이게 된다.
초반의 진행은 거의 완벽에 가깝도록 흥미진진했고, 전종서와 손석구 배우의 연기는 찰떡처럼 잘 맞았다. 특히, 전종서는 도발적이면서도 매력 있는 자영의 독특한 캐릭터를 훌륭하게 표현해 냈다. 로맨스 영화는 등장하는 두 인물이 얼마나 매력적인가가 관건인데, 이 작품은 두 배우 모두 귀엽고 매력적이게 보인다. 자연과 우리는 작은 부분들까지도 잘 표현하였고, 각자의 개성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자영의 기상알람으로 설정된 핑클 노래라든지, 핸드폰을 꾸미는 방식, 노트북에 붙인 스티커들, 헌혈과 평양냉면 같은 요소들이 잘 들어가 있다. 자영이 가지게 된 9천만 원 상당의 빚과,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팟캐스트 진행자로 도전하는 모습까지 말이다. 잡지사에서 잘린 후 33세의 나이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들어가서 책 읽는다고 한소리 듣는 우리의 모습은 이 시대의 젊은 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냉혹하게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갈등, 우리의 칼럼
사랑에 대한 담론, 발칙한 이야기들로 영화 전반을 화려하게 수놓았지만 결국 서사를 이끌어가는 것은 갈등이다.
<연애 빠진 로맨스>는 각기 우리의 선배와, 자영의 전 남자 친구 이야기를 깔고 둘 사이에 하나의 폭탄 '칼럼'을 넣어두었다. 그리고 이걸 풀어가는 과정에서 영화는 라이브 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선배와의 관계에서 얻는 갈등은 너무 미약했고, 자영의 전 남자 친구 사건은 다소 작위적이고 극단적이었다. 결국 둘의 갈등이 극대화되는 사건은 우리의 '칼럼'이다. 우리는 자영과의 관계를 허락받지 않고 썼고, 우리가 자영에게 했던 말들이 사실은 칼럼에 쓰여 있던 것들이기도 했다. 자영이 받는 충격과 상처는 스크롤을 내리는 자영의 떨리는 손가락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잘못했지만, 우리가 한 행동은 법적으로는 큰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신상정보를 드러낸 것도 아니고, 각색도 들어갔기 때문에 고소가 성립될 여지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후 자영이 한 행동이 우리에게 더 큰 타격을 주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사실을 공론화하고 그로 인해 우리가 직장에서 그만두는 과정말이다. 우리는 칼럼니스트로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글을 썼고, 우리의 신분은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신상이 털리고 군대 시절 사진이 나도는 등 우리가 받은 정신적 충격도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부분에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렇다고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이 매끄러운 것도 아니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연애이야기
자영은 새 출발에 성공했고 우리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전락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자영이를 사랑하고 결국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난다. 연애 말곤 다 해봤으니 연애를 시작하자는 말에 해묵은 감정을 쿨하게 잊어주는 것도 다소 정리되지 않은 결말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연애 빠진 로맨스>는 아주 훌륭한 장점과 특징을 갖춘 작품이고, 초반에 나누는 사랑과 섹스의 담론이 인상적이지만 결국 두 남녀의 평범한 연애이야기로 단순하게 마무리되었다. 갈등이 일어나는 과정부터 봉합까지는 아슬아슬하게 균형이 무너질 듯 위태로웠지만, 얼렁뚱땅 넘어가버리는 여러 이야기들은 영화 후반부가 많이 부족했다고 느껴지는 점이었다. 연애와 섹스, 사랑과 결혼, 그리고 청춘들이 처한 현실과 그 안에서 발버둥이 전부 담긴 영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발칙한 도발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 내면은 아주 진중한 물음과 고민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결말만 잘 보충했어도 수작의 반열에 오를 충분한 자격을 갖춘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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