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삶, 다른 사람, 다른 관계
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오프닝에서 보여주는 자매의 모습은 정반대의 성격을 묘사하고 있다.
한 가닥이라도 올이 나가면 안 되는 스타킹에 가지런한 구두를 신고 블랙커피를 마시는 명은(신민아)과, 허름한 양말에 큼지막한 장화를 신고 속이 비치는 앞치마를 입고 믹스커피 한잔 마시는 명주(공효진).
명은이는 칼같은 단발머리와 차가운 인상처럼 한 치의 양보도 타협도 없는 삶을 살아왔고, 명주는 고무줄로 대충 묶은 파마머리와 자유분방한 메이크업에 활짝 웃는 얼굴처럼 둥글둥글 살아가고 있다. 엄마는 같지만 아빠가 다른 이 자매는 어릴 적부터 엄청나게 싸우며 커서는 연락도 안 하고 사는 자매사이이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의 장례식으로 다시 만나게 되는데 각자의 아빠만큼 서로 다르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이 어쩔 수 없이 다시 만나 부딪힌 순간 불편하고 어색한 동생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여정을 통해 두 사람이 바뀌는 것이 이 영화의 내용이다.
여행의 과정, 오르골과 가계부
이 자매의 여행은 어떤 과정을 담고 있을까. 칼같은 성격의 동생 명은이가 언니 명주를 통해서 타협하는 방법을 배워나가는 것과, 동생 명은이 와 딸 승아의 상처를 외면하던 명주가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아픔을 이해하며 서로의 입장을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시작은 비행기 대신 배를 타는것인데, 회사로 복귀가 급한 명은이 갈길이 먼데 비행기도 못 타고 자꾸만 여유 부리는 명주가 답답하다. 4시간이나 걸려야 제주에서 부산까지 가는 배 안에서 명은이는 다른 할 일도 없으면서 명주를 달달 볶는데, 배가 익숙하지 않아 멀미를 하는 명은이 와 달리 명주는 사람도 만나 어울리고 게임도 하고 술도 먹는다. 배는 파도를 타기도 넘기도 한다. 이 바다와 파도는 마치 인생에 찾아오는 굴곡이라고 느껴졌다. '부모 잘못 만난 죄' 같은 건 없다면서 주어진 삶과 다가오는 일들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명주는 다가오는 파도를 흘려보내며 뱃멀미를 하지 않고, 자신을 버린 아빠에게 복수하기 위해 남부럽지 않게 성공하려고 빡빡하게 살아온 명은이는 상중인데도 쉴 새 없이 업무전화가 걸려오는 악독한 회사에서도 살아남아 자리를 지켜온 만큼 타협 없이 살아왔기에 넘실대는 파도를 견디기 버거워한다.
그러나 명주와 함께 여행하는 동안 명은이도 점차 타협하는 방법을 배워간다. 지저분한 방도 참고, 이모가 만든 옷도 입고..
그렇다면 명주는 어떨까. 명주는 속편하게 사는 스타일이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선입견이 없는 게 특징이다.
명주의 문제는 남들도 자기 같은줄 알거나 그러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아빠가 없는 집도 있고, 엄마가 없는 집도 있다면서, 없으면 그냥 없는 대로 살면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딸 승아의 상처도 동생 명은이의 상처도 제대로 어루만져주기는 커녕 해집어 놓는 것이다. 글러나 여행하는 동안 명은이가 말하고 화내는 것들을 통해 딸 승아의 마음속에 있는 상처들을 짐작하게 되면서 점차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모든 여정이 끝나고 제주도로 돌아가는 배 위에서 두 자매는 각자가 가지고 있던 오르골과 가계부를 서로에게 선물한다.
오르골 안에는 명은이에게 보내는 편지와 사진이 있었고, 가계부안에는 두딸을 향한 엄마의 일기가 있다. 오르골은 아빠의 마음이었고, 가계부는 엄마의 마음이었다. 각자 숨기고 독차지하던 것들을 내어주면서 두 사람이 진짜 가족이자 자매가 된다고 느껴졌다.
생선을 굽는 방법
명주가 명은이의 아빠에게 선물받은 오르골 안에는 두 딸에게 전하는 두장의 편지가 있었다. 하지만 명주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명은이의 편지를 불태워 버렸고, 수십 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고백한다.
명은이의 아빠는 일본에서 수술을 하고 여자가 되어 현아로 돌아왔던 것인데, 오랜 시간 아빠임을 밝히지 못하고 이모와 조카의 관계로 살아왔다. 두 사람 모두 사실을 말하고 싶었지만 말을 꺼내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이야기임은 분명했다.
그렇게 자꾸만 미루어지고 미루어지던 진실은 엄마가 돌아가시고 고향에 돌아온 명은이가 아빠를 찾겠다며 명주를 끌고 여행을 떠나면서 어쩔수 없이 점점 다가왔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직접 말씀해 주셨다면 더 좋았을까. 아니면 어린 시절 일본에서 돌아온 아빠가 곧바로 사실을 털어놓았어야 할까. 가장 좋은 타이밍은 과연 언제였을까 생각해 본다.
제주도로 돌아가는 배 위에서 명주는 생선 굽는 법에 대해 말해준다. 자꾸 뒤적거리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
아빠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를 언제 말하는지 보다는 언제 듣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 같았다. 뒤집을 만큼 충분히 익은 생선처럼, 들을 사람의 마음이 준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자매는 여행을 하며 싸우고 지지고 볶으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명은이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명주는 말하는 사람이 아닌 받아들이는 사람이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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